이 글의 핵심
AI는 시장과 고객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지만, 복잡한 해외영업에서는 상대방의 의중과 타이밍을 읽고, 책임을 판단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AI에 맡기기 어려운 세 가지 영역을 살펴볼게요.
AI에게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이 나옵니다. 시장 규모와 경쟁사를 조사하고, 거래처 정보를 요약하며, 제안서와 이메일 초안까지 만들어 줍니다.
그렇다면 20년 경력의 해외영업 팀장은 이제 무엇으로 자신의 역할을 증명해야 할까요.
AI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과 영업 담당자가 거래를 판단하는 능력은 같지 않습니다. 해외영업에서는 고객의 말 뒤에 남은 의중, 관계를 움직일 타이밍, 결정 이후의 책임까지 함께 다뤄야 합니다.
앞선 글에서 팀장의 차별화는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에서 보고받을지 그 경계를 설계하는 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경계 안에서도 마지막까지 사람이 붙들어야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구매자는 AI와 사람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Gartner는 2025년 8월 25일, 2030년까지 B2B 구매자의 75%가 AI보다 인간 상호작용을 우선하는 영업 경험을 선호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거래가 복잡해지고 위험이 커질수록 구매자는 실제 사람에게서 확신과 개인화된 설명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B2B 구매자가 다시 모든 과정에서 영업사원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Gartner가 2026년 발표한 자료에서는 B2B 구매자의 67%가 영업 담당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구매 경험을 선호했습니다. 반면 69%는 AI가 제공한 정보를 검증하기 위해 영업 담당자를 찾았습니다.
구매자는 제품 정보와 일반적인 비교를 얻을 때는 AI와 디지털 채널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고, 조직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위험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다시 사람을 찾습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해외영업은 사람이 AI와 경쟁하는 일이 아닙니다. AI가 처리할 영역과 사람이 개입할 순간을 정확히 구분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첫째, 말 뒤에 남아 있는 의중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바이어가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인지, 시간을 벌기 위한 표현인지, 사실상 완곡한 거절인지는 문장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저는 일본 고객사들의 반응과 의중을 읽는 게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확인해야 할 것은 말의 내용만이 아닙니다. 이전 회의보다 질문이 구체적으로 바뀌었는지, 답변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는지, 의사결정권자가 다음 회의에 참석하는지, 가격보다 내부 승인 절차를 더 자주 묻기 시작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영업 담당이 읽어야 하는 신호들입니다.
AI도 이메일, 녹취와 대화 패턴을 분석해 위험 신호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볼 수 있는 것은 입력된 자료 안에 있는 신호입니다. 고객사 내부의 정치적 상황, 담당자가 말하지 않은 부담, 그 사람과 오랫동안 거래하며 형성된 맥락까지 자동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사람의 판단도 언제든 틀릴 수 있습니다. 다만 경험 많은 영업 담당자는 불완전한 신호를 근거로 다음 질문을 만들고, 고객에게 다시 확인하며, 자신의 해석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감을 믿는 일이 아니라, 직감이 알려 준 이상 신호를 질문으로 검증하는 일입니다.
둘째, 관계를 움직일 타이밍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같은 제안도 언제 꺼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단가 인하를 요구받았을 때 즉시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거래가 있는 반면, 고객사의 예산과 내부 검토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래도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먼저 해결책을 보내야 할 때도 있고, 고객이 내부 상황을 설명할 여지를 남겨 둬야 할 때도 있습니다.
AI는 과거의 거래 자료를 바탕으로 연락 시점과 문구를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거래에서 지금 압박해야 하는지, 한발 물러서야 하는지는 데이터만으로 정답을 내기 어렵습니다.
해외영업에서 타이밍은 단순한 발송 시간이 아닙니다. 고객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담당자가 조직 내부에서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요구할 수 있는 관계적 위치에 있는지를 함께 판단하는 일입니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능력과 그 문장을 꺼낼 순간을 아는 능력은 다르죠.

셋째, 결정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입니다
AI는 여러 조건을 비교해 “진행하는 편이 유리합니다” 또는 “이 거래는 위험합니다”라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격을 확정하고, 납기를 약속하며, 개발비를 투입하는 순간부터는 회사가 실제 비용과 위험을 부담합니다. 결정이 틀렸을 때 고객에게 조건을 다시 설명하고, 내부 조직을 설득하며, 손실을 수습하는 건 사람입니다.
AI의 추천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책임의 주체까지 AI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팀장이 AI의 분석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도 판단입니다. 분석에 어떤 정보가 빠졌는지 확인하고, 실패했을 때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지 검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AI 시대에 사람에게 남는 역할은 모든 일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근거를 믿을 것인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 이후 누구에게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계약서에 사인만 남겨놓고 뭔가에 걸렸던 순간
한 유럽 바이어와의 계약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였습니다. 조건도 합의됐고 서류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화상 회의에서 담당자의 표정과 말끝이 어딘가 미묘하게 무거웠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계약을 서두르는 대신, “혹시 내부적으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신가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실 상부에서 물량 축소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만약 그 신호를 무시하고 사인을 밀어붙였다면, 계약은 체결됐어도 곧 분쟁으로 번졌을 것입니다. 아첨꾼인 AI는 '이제 다 됐다, 수주 축하한다!'라고 말했겠지만, 사실 사람이 읽은 것은 ‘아직 남은 불안’이었습니다.
사람의 판단은 AI와 반대편에 있지 않습니다
AI가 실행을 더 많이 맡을수록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지점은 오히려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일은 AI에 맡길 수 있습니다. 고객의 반응을 분석하고 다음 행동을 추천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객의 의중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고, 관계를 움직일 시점을 결정하며, 그 결정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역할입니다.
여기서 사람의 판단을 경험이나 감각만으로 미화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일한 사람도 고객의 말을 잘못 해석하고, 관계를 과신하며, 자신의 직감을 사실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영업 판단은 AI의 분석과 사람의 직감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AI가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삼되, 숫자에 담기지 않은 신호를 질문으로 확인하고, 최종 결정은 사람이 책임지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것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질문을 만들고,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며, 결과 앞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최근 AI의 분석과 자신의 직감이 달랐던 순간에 어느 한쪽을 선택하셨습니까. 아니면 그 차이가 생긴 이유를 고객에게 다시 확인하셨습니까?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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