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가 화를 낼 때 꺼내는 첫마디는 해명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샘 혼의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 나오는 동의, 사과, 행동의 3단계를 해외영업 클레임 현장에 맞춰 풀었습니다. 바로 쓸 수 있는 말 바꾸기 표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7시, 메일함 맨 위에 독일 고객사 구매 담당자의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제목은 짧았습니다. "This is unacceptable." 저는 답장 첫 줄을 세 번 지웠다가 다시 썼습니다. 세 번 모두 "Due to"로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명만 하고 있었던 거죠.
클레임 메일 앞에서 왜 해명부터 쓰게 될까요?
납기가 2주 늦어진 건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죠. 자재 협력사의 생산 차질, 선적 일정 변경, 항만 적체가 겹쳤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첫 문단에 넣었습니다. 정확하고 성실한 답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온 것은 통화 요청이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I didn't ask why. I asked when." 그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언제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겁니다. 제가 보낸 원인 분석 세 줄은 그 담당에겐 본인에게 책임을 미루는 말로 읽혔던 것 같습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이 말하는 텅후란 무엇인가요?
텅후(Tongue Fu)는 혀(tongue)와 쿵후(kung fu)를 합친 말입니다. 쿵후가 몸으로 하는 호신술이라면, 텅후는 말로 하는 호신술입니다.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습니다. 대신 그 공격을 흘려보내고 누그러뜨립니다.
이 개념은 샘 혼이 1996년에 낸 책 〈Tongue Fu!〉에서 나왔습니다. 국내에는 2008년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으로 번역 출간됐고, 15주년 특별기념판도 나왔더라고요. 이 책은 전략마다 버려야 할 말과 골라야 할 말을 짝지어 제시합니다. 그래서 읽고 나면 다음 날 회의에서 바로 써볼 수 있습니다.
화난 거래처에 쓰는 첫마디, 동의·사과·행동의 3단계
샘 혼은 자신의 칼럼에서 불만 대응의 원칙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When people complain, don't explain." 불만을 말하는 사람에게 설명하지 말라는 뜻이죠. 해명은 변명처럼 들리고, 상대는 우리가 책임을 피한다고 느낍니다. 그가 대신 권하는 순서는 세 단계입니다.
1. 동의: 상대 말에서 맞는 부분을 먼저 인정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약속한 납기는 이번 주였습니다." 사실을 먼저 인정하면 상대는 더 이상 우리를 설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2. 사과: 원인보다 불편을 먼저 사과합니다: 상대가 겪는 문제, 예를 들어 생산 라인 차질에 대해 사과합니다. 이때 원인을 함께 붙이지 않습니다.
3. 행동: 지금 할 수 있는 일로 대화를 옮깁니다(대안 제시): 대체 출하 일정, 부분 선적, 항공 운송 같은 선택지를 내놓습니다. 대화의 중심이 과거의 잘못에서 앞으로의 해결로 옮겨갑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오후 다시 쓴 답장의 첫 문단은 이랬습니다.
You're right. We committed to shipping this week, and we missed it. I'm sorry for the pressure this puts on your production schedule. Here is what we can do today: ship 40% by air on Thursday, and the balance by sea next week.
원인 설명은 지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맨 아래 옮겨서, "Background" 항목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답장은 10분 만에 왔습니다. 항공 운송분을 50%로 늘릴 수 있는지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싸움이 협상으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버려야 할 말과 골라야 할 말, 한눈에 보기
버려야 할 말골라야 할 말달라지는 점
| 버려야 할 말 | 골라야 할 말 | 달라지는 점 |
| 그건 저희 잘못이 아닙니다 | 얼마나 곤란하실지 짐작이 됩니다 | 상대의 처지를 먼저 받아줍니다 |
|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 제안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 거절 대신 선택지를 건넵니다 |
| 저희는 고객사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 왜 그렇게 느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비난을 부정하지 않고 진짜 문제를 묻습니다 |
| 누구 책임인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 다시 생기지 않게 할 방법부터 정하겠습니다 | 과거가 아니라 다음을 이야기합니다 |
세 번째 줄이 특히 중요합니다. "You don't care about us" 같은 말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부정하는 순간 상대는 틀린 사람이 되고, 대화는 말싸움이 됩니다. 이유를 물으면 상대는 진짜 불만을 꺼냅니다. 예를 들어 지난달 샘플 회신이 늦었던 일 같은 것입니다. 그 문제는 우리가 고칠 수 있습니다.
사과하면 책임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요?
해외영업을 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입니다. 실무에서는 두 가지를 나눠서 다룹니다. 하나는 상대가 겪는 불편에 대한 사과이고, 다른 하나는 원인과 계약상 책임에 대한 판단입니다.
"I'm sorry for the disruption"은 상대의 상황에 공감하는 말입니다. 지체상금이나 비용 분담처럼 계약 조항이 걸린 문제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별도의 공식 문서로 다룹니다. 첫 답장에서 둘을 섞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공감이 빠지면 관계가 흔들리고, 책임 판단을 서두르면 협상력을 잃습니다.
팀장이 첫마디를 정해두면 팀이 달라지는 이유
그 일이 있은 뒤 저희 팀에서는 규칙 하나를 정했습니다. 클레임 답장의 첫 문단에는 해명을 쓰지 않는다는 규칙입니다. 지난주 입사 2년 차 팀원이 가져온 초안도 원인 분석 다섯 줄로 시작했습니다. 고친 것은 순서뿐이었습니다. 인정, 사과, 대안을 위로 올리고, 원인을 아래로 내렸습니다. 문장은 거의 그대로였는데, 답장의 온도가 달라졌습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말은 비굴한 말이 아닙니다. 상대를 이기려는 대신 문제를 함께 풀자고 제안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최근에 받은 클레임에서, 답장 첫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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