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은 목표가 될 수는 있어도 일하는 이유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남들이 기대한 대로 성실하게 사다리를 오른 판사는, 죽음 앞에서야 자기 삶이 잘못된 것이었을지 모른다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닌 지금 던져야 합니다.
이 글은 <직장인 소설 추천 6편, 회사에서 버티는 마음을 읽는 고전 연재>의 여섯 번째 편입니다. 이 연재글에 대한 전체 소개글은 이 글 맨 아래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오래 거래해 온 협력사 상무님의 빈소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 기억에, 나이 50을 갓 넘긴 나이였습니다. 조문을 마치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옆자리에서 그 회사 직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고인이 된 그 상무님의 자리에 누가 올라가게 될지, 이번 인사가 앞당겨질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육개장이 식어 가는데도 고인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제 장례식장의 테이블을 떠올렸습니다.
동료들은 왜 그의 죽음보다 인사이동을 먼저 떠올렸을까요?
톨스토이가 1886년에 발표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주인공의 장례식에서 시작합니다. 판사 이반 일리치의 부고를 들은 동료들은 슬픔보다 먼저, 그의 빈자리로 생길 전보와 승진을 계산합니다. 죽은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그라는 데서 안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연기하면서,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연금을 최대한 받을 방법을 묻습니다. 그는 겨우 마흔다섯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어떤 장례식 장면을 이 글 맨 앞에 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사람이 평생 쌓은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남들 보기에 옳았던 삶
이반 일리치는 법률학교를 나와 몇 년마다 지방을 옮겨 다니며 차근차근 경력을 쌓습니다. 막 승진한 친구의 영향력 덕분에 원하던 자리에 오르기도 합니다. 사람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권한과 그 자리가 주는 위엄을 그는 즐깁니다. 가정생활이 힘들어질수록 일에 더 몰두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그의 삶을 가장 평범했고, 그래서 가장 끔찍했다고 적습니다.
그를 무너뜨린 사고마저 상징적입니다. 승진 뒤 장만한 근사한 새 집을 꾸미다가, 커튼 다는 법을 직접 보여주려고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져 옆구리를 다칩니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다듬던 그 순간이 죽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승진 사다리의 끝에는 몇 자리가 있을까요?
한국CXO연구소가 2025년 11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 매출 100대 기업 직원 가운데 임원의 비중은 0.82%였습니다. 임원 한 명당 직원이 122.5명이라는 뜻입니다. 전자 업종은 136.6명당 한 명꼴이었습니다.
18년 동안 팀장으로 일하며 이 숫자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사다리 끝 자리는 백 명 중 한 명에게 돌아갑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아흔아홉 명은 승진 말고 다른 대답을 하나씩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 대답이 없는 사람에게 승진 탈락은 경력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가 됩니다.
이반 일리치 곁에 남은 단 한 사람
병이 깊어지자 가족은 그가 죽어 간다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모두가 잠시 아픈 것일 뿐이라는 듯 일상을 이어 갑니다. 그 거짓말 속에서 그를 위로한 사람은 젊은 하인 게라심 하나뿐이었습니다. 게라심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꾸밈없는 연민으로 그를 돌봤습니다.
게라심이 곁에서 잠든 밤, 이반 일리치는 처음으로 묻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 전체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는 이 질문을 몇 주 동안 미루고 거부하다가 마지막 날에야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 그를 짓누르던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 이반 일리치가 쌓은 것 | 그가 놓친 것 | 나에게 물어야 할 것 |
| 직함과 권한 | 직함 없이도 그를 찾는 사람 | 명함을 내려놓아도 연락할 사람이 있는가? |
| 남들 보기에 옳은 경력 | 스스로 납득하는 일의 이유 | 승진이 아니라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 근사한 집과 체면 | 게라심 같은 한 사람 | 내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동료가 있는가? |
연재를 마치며
〈내기〉의 변호사부터 이반 일리치까지, 여섯 편의 고전 속 직장인들을 만나봤습니다.
- 문을 열어 두고 버티는 사람
- 안 하는 편을 택한 사람
- 사과를 멈추지 못한 사람
- 상자에 숨은 사람
- 쓸모를 잃은 사람
- 끝에서야 질문한 사람
백 년도 더 전에 쓰인 이야기들이지만, 모두가 오늘날 우리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는 얼굴들이더군요.
여러분은 승진 말고, 지금 회사에서 무엇을 쌓아 가고 싶으신가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아래 글도 이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직장인 소설 추천 6편, 회사에서 버티는 마음을 읽는 고전
이 글의 핵심자기계발서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만, 고전 문학은 지금의 내 처지를 비춰보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아래 '내 처지에 맞는 고전 고르기' 표에서 지금 내 처지에 가장 가까운 한 편부터
careeranatom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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