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핵심
AI는 이제 일을 대신하는 도구를 넘어,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거는 상대가 되었습니다. 팀장이 AI와 속도로 경쟁할 수는 없지만, 팀원이 묻기 쉬운 사람이 되는 일은 여전히 팀장만 할 수 있습니다.
금요일 밤 11시, 메신저 알림이 울렸습니다. 입사 2년 차 팀원이었습니다. "팀장님, 아까 말씀하신 가격 조정 건 AI한테 물어봤는데요, 이렇게 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첨부된 초안은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서늘합니다. 그 질문을 오후 내내 제 옆자리에서 할 수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밤이 되어서야 AI에게 먼저 물었습니다.
AI 3부작 두 번째 책은 김수민 태재대학교 교수의 <AI션십>입니다. 지난 편의 <듀얼 브레인>이 AI와 '일하는 방식'을 다뤘다면, 이 책은 AI와 '맺는 관계'를 다룹니다.

AI가 도구에서 관계로 바뀌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 AI와 '관계(Relationship)'를 합친 말입니다. 저자는 AI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경쟁의 핵심이 AI가 얼마나 똑똑한지가 아니라 사용자와 얼마나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는지로 옮겨갔다고 진단합니다. 근거도 있습니다. 2025년 한국에서 사용 시간 1위를 기록한 AI 서비스는 기능 중심의 앱이 아니라 관계에 집중한 챗봇이었습니다.
'관계의 특이점'이란 무엇인가요?
저자는 인류가 이미 '관계의 특이점'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이 AI를 쓰는 이유가 "일을 잘해서"에서 "편해서, 나를 알아서"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회사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보고서 초안이 필요할 때만 AI를 열었다면, 이제는 팀장에게 혼날지 모르는 질문, 동료에게 묻기 민망한 질문을 AI에게 먼저 꺼냅니다. AI가 기능이 아니라 일상 속의 말상대가 된 것입니다.
팀원은 왜 팀장 대신 AI에게 물을까요?
책에서 저자는 이 변화가 만드는 경제를 감정 경제, 관계 경제, 올웨이즈 온(Always-on) 경제의 세 가지로 나눕니다. 이 가운데 팀장에게 가장 찔리는 부분은 '올웨이즈 온'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24시간 켜져 있다는 뜻입니다.
팀장은 회의에 들어가 있고, 전화를 받고 있고, 밤에는 퇴근합니다. AI는 금요일 밤 11시에도 기다리지 않고 답합니다. 게다가 AI는 질문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걸 아직도 몰라?"라는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팀원 입장에서는 팀장보다 AI가 묻기 쉬운 상대인 셈입니다.
제가 최근 겪은 일화
몇 달 전, 신입 팀원이 미국 고객사의 품질 클레임에 답장을 보냈습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쓴 메일은 정중하고 매끄러웠습니다. 문제는 사과가 지나쳤다는 점이었죠. 놀랍게도, 원인 분석도 끝나기 전에 "전적으로 저희 책임"이라고 인정했고, 다음 발주분 단가 보상까지 먼저 언급했습니다. 권한을 한참 넘어선 내용이었습니다. 그 고객사가 협상 때마다 이런 문장을 근거로 삼는다는 것을 저는 10년 넘게 겪어 알고 있었습니다. 왜 먼저 묻지 않았느냐고 하자 팀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팀장님 바쁘신 것 같아서요."
AI는 문장을 알았지만, 그 고객사와 우리가 쌓아 온 관계의 역사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팀원이 저보다 AI를 먼저 찾은 이유는 AI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제가 더 멀게 느껴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 팀장은 AI와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속도와 대기 시간으로는 AI를 이길 수 없습니다. 대신 팀장만 줄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맥락입니다. 이 고객사가 어떤 문장에 민감한지, 작년에 무엇으로 서운해했는지는 사람의 기억에만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책임입니다. AI는 조언하지만, 결과가 틀어졌을 때 함께 수습하는 것은 팀장입니다.
팀원들에게 AI를 쓰지 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안 쓰면 일이 안 됩니다. 대신 "AI는 뭐라던가요?"라고 먼저 묻습니다. AI의 답을 가운데 놓고 같이 보면, 팀원은 부담 없이 묻고 저는 맥락과 책임을 더할 수 있습니다.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10분씩, 어떤 질문을 해도 좋은 시간을 따로 잡아뒀습니다. 정말로 'Any-Question-Time'입니다.
팀장의 경쟁자는 AI가 아니라 문턱입니다
팀원이 AI에게 먼저 묻는다고 서운해할 일이 아니죠. 그깟 기계에게 질투심을 느낄 것도 없습니다만, 이게 팀장에게 묻는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신호인 건 알 수 있습니다. AI가 이제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비집고 들어온 요즘, 팀장이 지켜야 할 건 정답을 가장 많이 아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 묻기 쉬운 자리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플러스 휴먼>을 통해, AI 곁에서 사람이 더해야 할 몫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팀원은 막히는 순간 누구를 먼저 찾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요즘 누구에게 먼저 묻고 계신가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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