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핵심
- 두 시간짜리 회의가 길어지는 건 상사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 혼자 읽으면 혼자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실무자가 바꿀 수 있는 건 회의 길이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들고 나오는 문장 하나입니다.
인크루트가 2025년 직장인 604명에게 회의 문화를 물었을 때, 회의 한 번에 평균 1~2시간을 쓴다고 답한 사람은 24.3%였습니다. 넷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자료를 보내 놓고 "같이 한번 보자"는 연락을 받아 방으로 들어가는 자리는, 그 24.3% 안에서도 유독 길게 늘어집니다.
미리 읽고 필요한 부분만 짚으면 십 분이면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도 첫 줄부터 함께 읽습니다. 상사가 게을러서일까요. 이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본 제 결론은 아니라는 쪽입니다. 이 자리는 성향이 아니라 구조에서 자랍니다. 오늘은 그 구조를 세 가지로 나눠 짚어보겠습니다.
이유 1. 혼자 읽으면 혼자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방에서 자료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다음에 남는 건 결정 하나뿐입니다. 반면 같이 읽으면 판단도 참석자들과의 공동 작업이 됩니다. 나중에 숫자가 틀어져도 "그때 같이 보지 않았느냐?"라면서 판단의 책임을 혼자 짊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실무자의 시간을 빼앗는 행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 책임을 부하직원과 나누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회의가 비효율적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첫 번째로 꼽은 이유도 '의견과 상관없이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어서'(56.0%, 복수응답)였습니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데도 굳이 자리를 여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결론이 아니라, 결론을 함께 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같이 책임질 사람 말이죠.
이유 2. 무엇을 볼지 모르면 전부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읽고 들어온 사람은 앞 몇 장만 넘기고도 질문이 나옵니다. 확인할 것과 넘길 것이 이미 구분되니까요. 기준 없이 앉은 사람에게는 전부 읽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한 글자씩 따라 읽으면 꼼꼼해 보이지만, 실은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른다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피터 드러커가 <자기경영노트>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회의'를 따로 한 항목으로 떼어 둔 것도 이 지점입니다. 그는 회의 자리를 열기 전에 이 자리로 무엇을 얻을 것인지부터 정하라고 했습니다. 읽는 일은 그다음입니다. 순서가 뒤집히면 시간은 읽기에 다 쓰이고 정할 것은 그대로 남습니다.

이유 3. 읽느라 걸린 시간이 검토했다는 증거로 간주됩니다
유럽 고객사의 단가 인상 요청을 정리해 올린 적이 있습니다. 환율 흐름, 원자재 단가, 3년치 물량 추이까지 붙여 열두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자료를 올린 날 오후 내내 함께 읽었고, 그 자리에서 나온 지시는 "조금 더 보고 가자" 한 문장이었습니다. 황당했죠. 그런데도 그 건은 충분히 검토한 사안으로 기록됐습니다. 오후를 함께 허비했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판단은 내려지지 않은 겁니다. 이른바, '검토의 알리바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그렇다면 실무자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요
이런 자리를 없애는 일은 실무자 권한 밖이겠죠. 대신 그 자리를 마치고 무엇을 들고 나올지는 미리 설계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부딪혀 보니 세 가지가 효과가 있었습니다.
| 시점 | 할 일 | 남는 것 |
| 회의 전 | 회신 제목에 '오늘 정할 것: 단가 인상률 승인 여부' 한 줄을 미리 써버립시다. | 자리의 목적을 미리 고정 |
| 회의 중 | 화면 넘기는 순서를 보고자가 컨트롤하고, 확인만 하면 되는 장은 건너뜁시다. | 읽는 속도를 내가 통제함 |
| 회의 후 | 결정, 보류, 폐기 세 칸으로 나눈 표로 정리해서 상사에게 보냅시다. | 허비한 것 같은 두 시간을 증거로 남김 |
세 번째가 특히 중요해요. 말로 오간 것은 일주일이면 서로 다르게 기억하지만, 세 칸짜리 표는 반박하거나 수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게 만듭니다. 어느 쪽이든 그 순간 판단이 생깁니다.
두 시간 지나고 무엇이 남았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팀장이 되고 나서 비슷한 상황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팀원이 올린 신규 거래처 검토서를 놓고 표현을 고치고 순서를 바꾸며 삼십 분을 썼습니다. 판단하지 않아도 되고,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 안전한 자리였죠. 상사의 두 시간을 탓하면서 저도 팀원들의 시간을 삼십 분씩이나 빼앗은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람이 다르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판단이 틀렸을 때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그대로인 한, 자리에 앉는 얼굴만 바뀌고 두 시간은 또 허비됩니다. 다만 그 안에서도 차이는 생깁니다. 회의를 줄이자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 자리에서 결정한 줄을 건져 나오는 사람이 결국 다음 결정을 내릴 판단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최근 참석한 긴 회의에서 남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아래 글도 이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두괄식으로 보고해도 실패하는 이유 - 피라미드 원칙으로 바꾸는 보고 구조
결론부터 말했는데 왜 상사는 또 묻습니까. "그래서 핵심이 뭐냐"는 반문이 돌아온다면, 두괄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론 아래 놓인 구조가 문제입니다.맥킨지 최초의 여성 컨설턴트였던 바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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