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핵심
- Q. 승진 약속은 왜 사람을 오래 붙잡지 못할까요?
- A. 말을 꺼낸 쪽은 이미 값을 치렀다고 여기지만, 이행은 본인이 손댈 수 없는 조건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 Q. 그렇다면 동기는 언제 꺼지나요?
- A. 약속이 깨질 때가 아니라, 예정되어 있던 날이 아무 말 없이 지나갈 때 꺼집니다.
경영진과 마주 앉아 승진 이야기를 들은 날, 저는 그 자리를 나오면서 이상하게도 마음이 그다지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는데도 말이죠.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 반년이 걸렸습니다.
말을 꺼낸 순간 이미 다 준 셈이 됩니다
그날 들은 말은 이런 식이었습니다. 자리를 하나 맡기려고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관련된 사람들과 이미 이야기를 마쳤다, 윗선에도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런 질문이 붙었습니다. 이런 소식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으냐고요.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질문은 이미 무언가를 받은 사람에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상했죠.
들은 말들을 하나씩 뜯어보면 확정을 뜻하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잠정, 협의, 보고. 전부 진행 중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듣는 사람에게는 결정된 일처럼 들립니다. 행동으로 옮길 의무는 그 누구에게도 없고, 고마움과 안도라는 반응만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그냥 지금 자리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이건 저뿐 아니라 다른 팀장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저는 개인의 소감이 아니라 승진 천장이 직원들 눈에는 다 보인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그 구조가 어떻다는 게 아니라, 제 반응, 제 기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 제기가 개인적인 호의로 받아쳐진 순간이었고, 저는 그 자리에서 그걸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결정을 바꾼 것은 역량이 아니었습니다
반 년쯤 지나 상황이 뒤집혔습니다. 제가 맡기로 했던 자리는 원래 현직자가 다른 조직으로 옮기면서 열린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에서 핵심 인력 한 명이 사표를 냈고, 앞으로의 운영이 불안정해지니까, 현직자의 이동마저도 연기된 거죠. 자리가 닫혔으니 제 이야기도 자연히 보류된 겁니다.
처음 통보를 받을 때 경영진이 들었던 근거는 역량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를 맡기에 아직 부족해 보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반 년 뒤 실제로 결정을 좌우한 변수는 역량이 아니라 자리가 여전히 열려 있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보니, 제 역량은 애초에 이 변화에 있어 아무런 의미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위안과 불안이 같이 옵니다. 일이 지연되는 건 제가 뭔가 잘못해서 생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또 앞으로 더 잘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조직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조건을 옮깁니다
사실 이런 일을 제가 처음 겪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사례를 목격한 적도 꽤 되고요. 이건 일종의 패턴처럼 보이기까지 하네요. 회사는 약속을 대놓고 어기지 않습니다. 다만 이행의 조건을 본인이 손댈 수 있는 범위 밖에다가 둡니다. 다른 사람의 이동, 다른 조직의 사정, 시장 상황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사람은 일이 잘 안 되더라도, 하소연할 대상조차 찾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런 상황 속에 있다면, 기다린 기간을 어떻게 계산하는지가 중요합니다. '1년 뒤로 미뤄졌다.'는 말을 또 확정된 대기 기간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기약도 없이 연기되는 되는 걸로 보느냐에 따라, 이후의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할지 가르게 됩니다. 이번 일을 틀어지게 만든 조건 (한 팀장의 사직으로 조직의 운영이 흔들리는 것)은 사실 나중에도 또 일어날 수 있지 않나요?
기다리는 사람에게 조용히 일어나는 일
퓨리서치센터가 2021년에 퇴사한 미국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퇴사 이유로 승진 기회 부재를 꼽은 비율이 63%로 낮은 급여와 같은 수준의 비율이었습니다. 조직은 사람이 돈 때문에 나간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올라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가 정확히 같은 무게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이탈이 조용하다는 데 있습니다.
- 기다리다 지친 사람은 항의하지 않습니다.
- 회의에서 먼저 안건을 들고 가는 횟수가 줄고,
- 고객사와의 문제를 윗선에 올리기 전에 혼자 정리해버리고,
- 조직의 1년 뒤를 상상하는 일을 그만둡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직은 그 사람이 사표를 내는 날까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팀장이 팀원에게 할 수 있는 것
솔직히 말씀드리면, 팀장 자리에서 이 구조를 바꿀 방법은 없어요. 그런 인사 결정권은 팀장에게 없습니다.
다만 방향을 아래로 돌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남습니다. 전 이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팀원에게 "조금만 더 버텨봐라, 내가 위에 이야기해두겠다"고 말할 때, 그건 여러분이 지금 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문장입니다. 이행 의무 없이 효과만 먼저 갖다 쓰는 말이죠. 확정되지 않은 것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대신 언제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가능한지를 함께 그려보는 편이 낫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입니다. 즉, 팀원들에게 의미 없는 희망고문은 하지 말자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회사로부터 어떤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요?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질 조건은 여러분이 어떻게든 손이나 댈 수 있는 것들일까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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