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옵니다. 일이 없어 모니터만 켜놓고 있기가 민망해 엑셀을 띄워 놓고 바쁜 척을 해봤는데, 그 억지 연기도 은근히 힘들더라는 하소연 말이죠.
우스갯소리 같지만 여기에 조직의 구조가 들어 있습니다. 바쁜 척이 통하는 건 개인이 영리해서가 아니라, 조직이 그 바쁜 척이라는 신호에 실제로 반응하고 때로는 보상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메일과 메신저가 업무가 아니라 신호가 될 때
오래 지켜보면 업무 도구를 쓰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메일을 채팅처럼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 줄 보내고, 답 오면 또 한 줄 보내고. 정리해서 한 번에 보내면 끝날 일을 대여섯 번에 나눠 주고받습니다. 더 곤란한 경우는 이메일이 일을 넘기는 수단이 될 때입니다. 자기가 판단해야 할 사안을 질문 형태로 바꿔 관련자 다섯 명을 참조에 걸어 보냅니다. 그 순간부터 그 일은 발신자의 손을 떠납니다. 본인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지만 기록상으로는 일을 진행한 사람이 됩니다. 심지어는 그 일을 주도한다고 여겨지기도 하죠.
협업 도구 회사 '아사나 (Asana)'는 이런 활동을 '일을 위한 일'이라고 부릅니다. 업무 커뮤니케이션, 정보 검색, 앱 전환, 우선순위 변경 관리, 업무 상태 추적처럼 의미 있는 업무로부터 시간을 빼앗는 활동을 말합니다.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건 이미 널리 관찰된 현상이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왜 그게 유능함으로 읽힐까?
여기서 제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질문들을 그대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Q. 상사들은 정말 구분을 못 하는 걸까?
못 하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만 봅니다. 회신이 빠른 사람, 참조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 메신저에 늘 초록불인 사람은 잘 관찰이 됩니다. 반대로 반나절 자료를 파고들어 거래처 단가 구조를 뒤집어 본 사람은 그동안 일하는 티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렇게 조용히 일한 게 본업인데도 말이죠.
Q. 이건 성과로 판가름 나지 않을까?
연말에는 나겠죠.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 11개월 동안입니다. 그 기간 동안 회사는 개개인의 활동량을 능력의 지표로 씁니다. 정확해서 쓰는 게 아니라 그것밖에 안 보여서 씁니다.
Q. 회사는 왜 이걸 방치할까?
본업 이외의 일을 할 때 나는 손해를 계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신을 여섯 번으로 쪼갠 사람이 동료 다섯 명의 집중을 몇 번 끊었는지는 그 어떤 기록에도 잡히지 않을 겁니다. 비용으로 기록되지 않는 손실은 손실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 겉으로 보이는 것 | 실제 영향 | |
| 잦은 회신 | 성실함 | 상대의 집중력을 빼앗기 |
| 참조 다수 발송 | 협업 | 자신이 해야할 판단을 회피함 |
| 항상 온라인 되어 있는 메신저 | 헌신 | 한 순간도 몰입을 할 수 없는 상태 |
팀장 자리에서 본 풍경
시간이 좀 지난 일이긴 합니다만, 팀을 맡고 반년쯤 지났을 때, 팀원 두 사람을 놓고 약간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메일 회신이 늘 빨랐고 회의에서 진행 상황을 매끄럽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회신이 반나절씩 늦었고 말수도 적었습니다. 저는 대번에 첫 번째 팀원을 더 믿게 됐죠. 그런데 그해 실제로 신규 거래처를 뚫은 사람은 두 번째 직원이었습니다. 저부터도 역시 눈에 보이는 것만 능력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무엇을 봐야 할까?
제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누가 게으르고, 누가 성실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쁜 척하는 사람도 대개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다고 '본능적으로' 배운 것뿐입니다. 탓해야 할 대상은 직원들 개개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활동량만을 유일한 지표 두고 있는 구조입니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일 좀 하는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 보입니다.
다만 관리자 자리에 있다면 질문 하나는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요즘 바쁜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지난 분기에 어떤 결과(성과)를 남겼는가?"입니다. 활동은 매일 보이고 결과물은 분기에 한 번 보입니다. 보이는 주기가 다르다는 것만 인식해도 착시는 절반쯤 걷힙니다.
혹시 최근 한 달 동안, 팀에서 가장 조용했던 사람이 어쩌면 가장 깊이 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위시웍스 김작가 | 일과 삶의 지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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